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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가 잘못이 되는 세상

마음백과사전 2025. 6. 2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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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가 잘못이 되는 세상

서아람 변호사 2025.06.26.

 

엊그제 참석한 교권보호위원회에 중증 자폐 학생의 안건이 올라왔다. 학교에서 화재경보기가 오작동하자, 강박증과 불안증이 심한 특수 학급 남학생이 고성을 지르고 뛰어다니다가, 말리려는 담당 교사에게 의자를 던진 일이었다.

 

중학교 2학년인 남학생은 벌써 키가 170센티가 넘었고 덩치도 컸다. 왜소하고 가녀린 이십 대 여교사는 학교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공포라고 하소연했다. 특수 학급에는 호흡기를 달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는데,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 사고가 일어날까 봐 무서워 사직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어차피 학급 교체는 의미가 없으니, 강제 전학을 시켜달라고 울면서 애원하는 선생님 심정이 백분 이해됐다.

 

남학생 본인은 낯선 환경을 무서워한다고 하여 위원회에 오지 못했다. 정한 시각보다 늦게 도착해 허겁지겁 뛰어 들어온 엄마는, 아이를 입원시키려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니며 상담하다 늦었다고 했다. 아이 병원비를 대느라 일용직을 하던 남편은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엄마가 일하는 동안 아이를 봐주던 친정어머니는 몇 년 전 암으로 돌아가신 상황.

 

유일한 부양자인 엄마는 기초생활수급만으로는 생계가 유지되지 않아 단시간 근로를 해야 한다. 아이는 집에 있으면 스스로 밥조차 먹지 않고 굶는 데다가 돌발 사고를 일으킬 수 있어서 그나마 학교가 유일하게 기댈 곳인데, 차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모든 특수학교는 몇 년째 대기 번호가 단 하나도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라고 했다. 시설에도 가 보았지만, 까다로운 입소 조건과 높은 비용, 그에 비해 너무도 열악한 환경에 발길을 돌려 나왔다고 했다.

 

교권보호위원회에 참석한 보호자들에게 하는 질문은 대개 비슷하다. 아이 성향, 문제 행동이 시작된 시기, 장애나 질환이 있다면 그 증상이나 치료 경과, 재발 위험성, 반성과 사과 여부 등이다. 아이가 선생님에게 욕하거나 선생님을 때리거나 수업을 방해하는 행동에 대하여 부모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가볍게 여길 경우 따끔한 조언을 하는 것도 위원회의 역할이다.

 

그러나 죄송하다고, 정말 죄송하다고 반복하며 고개를 숙이는 아이 엄마에게, 그 어떤 위원도 어쭙잖은 조언이나 충고를 하지 못했다. 그녀가 어깨에 짊어진 짐의 무게는 이미 너무도 무겁고 가혹해서, 거기에 그 어떤 것도 더하고 싶지 않은 그런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반성 정도’를 점검하는 항목에서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어차피 이 사안은 피신고 학생이 잘못을 깨치고 반성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부모의 태도를 가지고 평가하여야 하는데, 도대체 뭘 반성하라고 요구해야 하는 것일까. 특수학교 자리가 없어 장애 있는 아이를 부득이하게 일반 학교에 넣은 것? 잘잘못을 구별하고 자기 행동을 통제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 아예 불가능한 아이에게 그걸 가르치지 못한 것? 전문 간병인이나 사설 교사를 붙여 아이를 집에서 돌볼 재력이 없는 것? 그 어떤 것도 엄마 탓이 아니었다. 엄마 탓이 되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피신고 학생 보호자’라는 신분으로 그녀를 이 자리에 앉혀놓고 사죄하게 만든 게 미안하기까지 했다.

 

출생률이 떨어져 폐교하는 학교가 줄줄이 늘어나는 이 나라에서, 특수학교는 왜 이렇게 부족하며, 시스템은 왜 부모와 교사를 갈아 넣어 모든 걸 해결하려 하는지, 학교도, 교사도, 부모도, 아이도, 모두 희생자라는 생각이 드는 사안이었다. 장애가 잘못인 세상이 아니게 되기를, 전쟁처럼 치열한 삶을 살아온 당사자들에게 질책하는 말이 아닌 따뜻한 위로와 치하를 건넬 수 있게 되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원한다.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06/26/XNUNXL6NUJEYLDBQWP5GKMOE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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