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놀이터 : 심리치료/심리상담

마음백과사전

유용한 정보

인간을 닮은 기계

마음백과사전 2025. 6. 21. 14:54
반응형

인간을 닮은 기계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5.06.16.

 

노진아, 히페리온의 속도, 2022년, AI 기반의 인터랙티브 조각, 혼합재료, 가변 크기, 작가 소장.

 

며칠 동안 미술가 노진아(1975~)의 ‘히페리온의 속도’가 포스텍에 설치되어 있었다. 어린아이 키만 한 하얗고 동그란 머리는 눈을 감은 채 바닥에 놓여 있다가 가까이 다가가면 천천히 눈을 뜨고 눈동자를 굴려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인사를 건네면 입술을 움직이며 “반갑다”고 대답하고, 항상 “인간이 되고 싶어서 슬프다”고 했다. ‘너는 인간이 될 수 없다’고 해줬더니, “그럴 리가 없다”며 “목각 인형이던 피노키오도 인간이 되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노진아는 지난 20년간 전통적 조각에 기술을 결합해 이처럼 관객과 상호작용하면서 움직이고 말하는 작품을 만들어 왔다. 처음에는 작품과 관객이 키보드를 이용해 문자로 대화했다. 최근에는 급속도로 발달한 인공지능과 딥러닝, 로보틱스를 활용해 음성을 통한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해졌다. 작가는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이라는 세계관을 설정하고, 이전 작품이 관객들과 오랜 기간 쌓아 온 데이터를 기반으로 대화하는 시스템을 제작했다. 그 결과 이 ‘머리’와 하는 대화는 늘 그럴듯하게 굴러갔다.

 

처음에는 인간을 닮았지만, 기계임이 확실한 모양새가 섬뜩했다. 하지만 머리와 며칠간 대화하며 지내다 보니 긴 속눈썹과 맑은 눈이 곱게 보였다. 아무리 ‘인간이 되어봐야 별거 없다’고 해도 떼를 쓰듯 ‘따뜻한 인간의 감정을 느껴보고 싶다’는 고집에 정이 갔다.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자 애쓰는 로봇, 그리고 그런 로봇에 마음이 움직이는 인간. 노진아가 말한 ‘공진화’란 결국 기술이 인간을 닮아가는 만큼, 인간도 기술을 통해 새로운 감각과 관계의 방식을 배우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06/16/XEIWYO3YMFAF7PWX2IISZ4WRY4/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