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저항하다 죄인 된 소녀, 61년 지옥서 풀려났다
범인 혀 잘라 징역형 받은 최말자씨, 재심서 무죄
최연진 기자 부산=권태완 기자 2025.09.11.

10일 오후 부산시 연제구 부산지방변호사회에서 최말자씨가 주먹을 번쩍 들며 “최말자는 무죄다”라고 외치고 있다. 1964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씨는 이날 부산지법에서 열린 재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건이 발생한 지 61년 만이다./연합뉴스
“피고인 최말자의 행위는 정당방위라고 인정됩니다. 따라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10일 오후 부산지법 352호 법정. 김현순 재판장의 말이 끝나자 방청석에서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피고인석 대신 증인석에 서서 선고를 듣던 최말자(79)씨의 눈가가 붉어졌다. 18세 소녀 시절,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절단한 사건이 있은 지 61년 4개월 만이다. 최씨는 1964년 이른바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날 재심(再審)에서 재판부는 “최씨는 위법한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행위를 한 것”이라며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당하게 침해당하지 않기 위한 정당방위였다”고 판단했다.
울음을 참으며 법정을 나서는 최씨를 향해 방청객들은 “최말자가 해냈다”라고 외쳤다.
지지자들 앞에 선 최씨는 주먹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최말자는 무죄다”라고 외쳤다. 60년간의 오명이 사라진 순간이었다.
사건은 1964년 5월 6일 밤 경남 김해의 한 마을에서 발생했다. 노모(당시 21세)씨가 최씨를 길바닥에 쓰러뜨리고 강제로 입을 맞췄다. 성폭행 위협을 느낀 최씨가 노씨의 혀를 깨물었고, 혀가 1.5cm쯤 절단됐다. 당시 경찰은 최씨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보고, 노씨에게만 강간미수 등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한다. 그런데 검찰은 오히려 최씨를 구속하고 노씨의 강간미수 혐의는 불기소 처분했다. ‘성폭행 미수 피해자’가 ‘중상해 가해자’로 뒤바뀐 순간이었다. 이 때문에 최씨는 6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최씨는 과거 본지 인터뷰 등에서 “수사 과정에서 ‘노씨랑 결혼하면 되지 않으냐’ 같은 모욕적인 말을 들어야 했고, 재판 과정에선 ‘순결성 검사’까지 받아야 했다”고 증언했다.

그래픽=백형선
여성 인권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이듬해 1월 부산지법은 “정당방위였다”는 최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당시 판결문엔 “남자로 하여금 ‘키스 충동’을 일으키게 한 데 대한 ‘도의적 책임’이 있다”는 문구까지 담겼다. 반면 노씨는 특수주거침입·특수협박죄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이 사건은 이후 형법 교과서와 ‘법원 100년사’ 등에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은 대표 사례로 소개됐다.

61년 전 성폭행범 혀를 깨물어 집행유예 확정판결을 받았던 최말자 씨가 10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최씨는 본지 인터뷰에서 “당시 법을 몰라서 항소도 못 했다”고 했다.
‘멀쩡한 남자 불구 만든 여자’라는 시선이 늘 그를 쫓아다녔다. 최씨는 결국 집을 나와 혼자 살았다. 아버지 권유에 따라 스물셋에 결혼했지만 이혼했고, 홀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미싱 공장 등을 전전했다.
환갑 넘어 시작한 공부가 전환점이 됐다. 못 배운 설움을 떨치고자 2009년 성인 여성을 위한 2년제 중·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한국방송통신대에 진학해 ‘성폭력’ 문제에 대해 알게 됐다고 한다. 최씨의 억울한 사정을 들은 대학 동기가 “우리 서울로 가자”며 최씨 손을 끌었다. 그렇게 서울 은평구 ‘한국 여성의 전화’를 찾아간 게 2018년이다.
당시 세계적으로 확산한 ‘미투 운동’도 용기를 줬다고 한다. 2년간 판결문과 자료를 모아서 2020년 5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은 순탄치 않았다. 1·2심 재판부는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다”며 최씨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24년 12월 대법원이 “최씨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하면서 길이 열렸다.
최씨는 이날 선고 직후 기자회견에서 “주변 사람들이 바위에 계란 치기라고 만류했지만, 이 사건을 묻고 갈 수가 없었다”며 “나와 같은 운명을 가진 피해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최씨는 다만 이날 재심 선고가 약 1분 만에 끝난 점, 법원의 사과가 없었던 점에 대해선 “몇 마디로 무죄를 선고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7월 열린 재심 결심 공판에서 최씨를 ‘피고인’ 대신 ‘최말자님’으로 부르며 사과하고, 무죄를 구형했었다.
최씨의 변호를 맡은 김수정 변호사는 “이 사건은 성차별적 편견 때문에 나온 오판(誤判)을 61년 만에 바로잡은 것”이라며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유죄가) 무죄가 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배상 청구 등 후속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최씨는 “현재도 성폭력 사건이 넘친다”며 “힘이 닿는 한 끝까지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 회복 활동에 함께하겠다”고 했다.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5/09/11/3NZGGFCDXBEHLF4NAQGU27C2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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