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놀이터 : 심리치료/심리상담

마음백과사전

오피니언.시각.시선

K팝에는 인재가 몰리는데 왜 이공계는 기피하는가 - 장대익 가천대 스타트업칼리지 석좌교수

마음백과사전 2025. 8. 13. 22:27
반응형

K팝에는 인재가 몰리는데 왜 이공계는 기피하는가

장대익 가천대 스타트업칼리지 석좌교수·진화학 2025.08.12.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글로벌 상위권을 휩쓸었다. 이번 주에는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의 ‘골든’이 빌보드 ‘핫 100’ 1위에 올랐다. 춤과 노래, 서사와 세계관, 팬덤 참여가 상승작용을 일으켜 보고 듣는 것을 넘어 함께 만드는 경험으로 확장됐다. 이 성공이 다시 증명한 것은 한 천재의 재능보다 시스템의 힘이다. 발굴, 훈련, 무대, 팬덤으로 이어지는 상승 시스템을 만든 K팝 세계의 설계 능력.

 

같은 시기 KBS의 한 다큐는 ‘의대 한국, 공대 중국’이라는 대조를 통해 우리 사회의 극심한 인재 편향을 거울처럼 비췄다. 국내 대학과 연구소의 급여·연구비·인사 시스템이 선진국에 뒤처진다는 탄식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한이 견고한 수입, 분명한 자격, 실패의 낮은 비용을 대표하는 의사직에 비해 이공계의 경우 성공은 소수의 대박으로 묘사되고 실패는 이력서에 흉터로 남는다. 그래서 부모와 학생에게 의대는 최상의 답이다. 특히 외환 위기를 집단적으로 기억하는 부모 세대에게 의사의 안정성과 인정 충족은 자식의 미래에 대한 합리적 강요이기도 하다. 탐욕이라 부를 수는 없다.

 

문제는 도덕이 아니라 설계다. 보상-위험-인정의 구조가 의대에만 최적화돼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것은 더 불확실한 업계로 보이는 K팝에는 인재가 몰린다는 사실이다. ‘왜 동일 사회에서 어떤 꿈(K팝)은 과잉 공급이고 다른 꿈(이공계)은 기근일까?’ 이유는 재능의 우열이 아니라 생태계의 설계에 있다. K팝 세계에서 입구는 상시 열려 있고(오디션), 성장 과정은 가시화되고(연습생–데뷔–컴백), 실패의 비용은 낮으며(다중 출구), 기여는 기록된다(크레디트). 이 네 가지는 사람들의 열망을 고조시킨다. “망해도 남는 것”이 있다는 감각이 지원을 촉발한다.

 

이 관점을 이공계에 옮겨보자. 중요한 건 더 많은 구호가 아니라 더 나은 연출이다. 첫째, 입구의 상시성. 한 번뿐인 공모전, 묵직한 스펙, 입사 시즌의 로또 대신, 문제를 중심으로 누구나 수시로 들어올 수 있는 파이프라인이 필요하다. 둘째, 성장의 가시화. 논문과 특허 이전에 작동하는 프로토타입과 데이터, 설계 로그가 ‘보이는 기록’이 돼야 한다. 셋째, 실패의 낮은 비용. 프로젝트가 끝나도 연착륙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촘촘히 엮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크레디트. 제품과 정책, 데이터와 코드에 기여한 이름이 영구히 남고, 보상이 그 기록을 따라 흐르도록 표준을 세워야 한다. K팝의 성공 신화가 말하는 바, 사람을 끌어당기는 것은 “보이는 무대, 예측 가능한 성장의 리듬, 그리고 나를 응원하고 보상해 주는 공동체”다.

 

여기서 가장 큰 장애물은 개인의 용기가 아니다. 정책 신호의 모순이다. 우리는 매년 “이공계를 키우겠다”고 말하면서 실제 제도는 정반대의 신호를 낸다. 실패는 개인의 책임으로 남기면서 규제와 조달은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설계한다. 연구비는 단기 실적에 묶고 성과의 소유권은 흐릿하게 만든다. 한쪽에서는 안정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상향의 보상을 제한한다. 입시 관문은 좁고 채용은 주로 시즌제다. 공공 조달은 최저가를 숭배하고 규제 특례는 파일럿에서 늘 멈춰버린다.

 

반면 K팝은 일관된 신호를 보낸다. 다음 시즌이 오고 연습 과정이 콘텐츠가 되며 이름이 크레디트에 남는다. 성공이 드물어도 시도는 잦고 실패는 자산이 된다. 이 설계된 위험 감수 시스템이 인재를 끌어당긴다. 이공계가 바꿔야 할 것은 바로 이 체감의 회로다. 실패해도 빈손이 아니며 성공하면 나눌 게 많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해야 한다. 스타트업 창업을 가르치고 경험하게 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이공계 사람들도 인정 욕구는 약하지 않다. K팝이 연습실 영상을 올리며 공감과 지지를 받듯이, 이공계도 연구 궤적을 어떤 형태로든 남길 수 있을 것이다. 관객도 다르다. 대중일 수도, 현장 전문가와 정책 담당자일 수도 있다. 관객이 있어야 지식의 여정이 외부의 눈과 만나고, 그 만남이 다음 기회를 만든다. 관객 없는 연구는 예산을 설득하기 어렵고, 팬덤 없는 제품은 시장을 설득하기 어렵다.

 

결국 인재 정책의 해법은 건강한 리듬에 있다. 상시 입구, 보이는 성장, 낮은 실패 비용, 남는 이름. 이 네 박자가 지속적으로 돌아가면, 교수는 프로젝트의 프로듀서가 되고, 학생은 연구와 작품으로 말하며, 기업은 유통과 확장에 집중한다. 지역도 이 리듬 위에서 저마다 무대를 만들 수 있다. 전국 소규모 무대에서 시작된 잦은 데뷔는 전체 이공계 생태계를 두껍게 만든다.

 

정책은 슬로건보다 루프다. 의대 쏠림은 한 방의 처방으론 멈추지 않는다. 무대가 바뀌어야 춤이 바뀐다. 우리의 과제는 천재를 설득하는 일이 아니라 평범한 재능도 반복해서 도전할 수 있는 ‘열망의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다. K팝의 기여는 이 루프의 성공적 작동에 대한 발견일 것이다. 지속 가능한 인기에는 늘 패턴이 숨어 있다. 이공계에도 이 루프를 돌려본다면, 우리 산업의 컴백 무대는 훨씬 다채로울 것이다.

 

https://www.chosun.com/opinion/chosun_column/2025/08/12/TVR5CD4UDJDQRHKAIWSXKMOUK4/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