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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P 아닌 MIP(Most Improved Player : 기량발전상)를 목표로

마음백과사전 2025. 3. 1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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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P 아닌 MIP를 목표로

이정구 기자 2025.03.14.

 

어느 한 기업의 부장급 팀장으로부터 ‘MZ 직원을 어떻게 이해하면 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 있다. 갓 입사한 신입 사원 A가 그 회사 대표의 신년사 초고를 썼는데 완성도가 높아 대표가 크게 만족한 뒤였다. 정직한 팀장은 대표 앞에서 ‘신입 A가 쓴 글입니다. 일을 잘합니다’라고 공을 돌리고 나왔다. 팀장이 A에게 이 일을 전하자, A가 답했다. “팀장님, 어디서 제 이야기 말아주세요. 저는 지금 주어진 일만 하고 싶습니다.”

 

직장 생활 10년 차를 맞은 지금, 팀장도 A도 모두 이해된다. 칼같이 ‘1인분’만 일해보려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뒤늦게 입대할 때, 이미 제대한 친구들은 입을 모아 ‘군대에선 딱 1인분만 해야 한다’고 했다. 1인분을 못 하면 속된 말로 ‘폐급’ 취급을 받고, 1인분 이상을 하면 ‘에이스’ 소리를 듣다가 일을 모두 떠맡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나름 그럴듯한, 합리적인 이야기였다. 모두 ‘펑크’ 내지 않고 각자 1인분만 충실히 수행한다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 제 몫을 하는 1인분의 삶의 방식도 존중할 만하다. 주 52시간제가 도입되고 1인분만 하기 더 좋은 환경도 됐다.

 

다만, 모두 1인분만 해선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좋을 때, 나쁠 때 가리지 않고 그렇다. 오랜 불황을 끊고 호황을 맞은 한국 주요 조선사는 작년 가동률 100%를 넘겼다. 납기 지연을 막기 위해 휴일까지 반납하고 일했다는 의미다. ‘주 52시간 예외’ 필요성이 나오는 주요 첨단 산업 연구·개발(R&D) 직군에서도 그렇다. 기술 경쟁이 치열한데 1인분만 해선 사실상 뒷걸음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인분을 둘러싼 주장은 첨예하고 엇갈린다. ‘성장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은 필요하지만 과로는 안 된다’는 딜레마다. 얼마 전 한국 여자 프로 농구 정규 리그 시상식에서 힌트를 얻었다. 주요 스포츠에선 기량발전상(MIP·Most Improved Player)을 시상한다. 가장 기록이 좋은 1명을 뽑는 최우수 선수(MVP), 신인왕 시상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올스타급 선수가 아니더라도 이전 시즌에 비해 가장 많은 발전을 한 선수에게 주는 상이다. 1인분을 못 하던 선수가 1인분을 하거나, 1인분만 하던 선수가 그 이상을 했을 때 가능하다.

 

올해 시상식에서 ‘지도상(최우수 감독)’을 받은 아산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은 혹독한 연습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농구 팬들 사이에선 “우리은행으로 팀을 옮겨서 환골탈태하는 선수가 유독 많다”고 한다. 이번 시즌 ‘약체’로 평가받았던 이 팀은 올해도 환골탈태한 여러 선수와 함께 정규 리그 우승을 했다. 이 팀에서도 유력한 MIP 후보가 있었다. 다만, 올해 MIP는 다른 팀 선수에게 돌아갔다. 우리은행 선수 이명관은 2표 차로 밀려 2시즌 연속 MIP 고배를 마셨다.

 

남들보다 더 많은 연습을 소화했을 그가 의기소침해졌을까. 위 감독은 이날 “이명관 선수가 MIP를 받을 줄 알았는데 안타깝다”며 “내가 줄 수 있는 상은 없지만, 상금은 주도록 하겠다”고 했다. 지도상 상금(300만원)은 MIP 상금(100만원)보다 많았다. 시상식 행사에선 박수가 쏟아졌다. 이 장면에서 동기 부여가 됐다. 지금 1인분을 해내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1인분을 넘어 기량발전상을 목표로 하기로 했다.

 

https://www.chosun.com/opinion/cafe_2040/2025/03/14/QDXWY56OJNAIFMJYXHOYVX24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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