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츠' 주도 국감, 보좌진만 죽어나네
신지인 기자 2025.10.30.

29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야당 의원들이 최민희 위원장(가운데 뒷모습)에게 항의하는 동안 오른쪽 여당 의원석 뒤로 보좌진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휴대폰으로 이 모습을 촬영하고 있다. 2025.10.29 /남강호 기자
올해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많이 들린 말은 “쇼츠(Shorts) 때문에 그러냐”였다. 상대 의원이 감사 중 맥락과 동떨어진 발언을 하거나, 난데없이 작심한 듯 고성을 지를 때마다 이런 반응이 나왔다. 국감장에는 의원 맞은편에 ‘쇼츠 각’을 놓치지 않으려 스마트폰을 들고 서 있는 보좌진이 꼭 있다. 감사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의원 유튜브 채널에선 ‘사자후 또 터졌다’ ‘상대 쩔쩔매게 만든 ○○’ 같은 제목으로 후원 계좌와 함께 쇼츠가 올라온다. 정작 피감 대상에게 유의미한 답을 끌어낸 의원은 조용히 묻히고 만다.
쇼츠에 빠진 의원들 때문에 보좌진은 몸이 서넛이라도 부족하다. 한 여당 의원은 5분 20초 동안 발언했는데, 당일 40여 초짜리 쇼츠 5건을 편집해 올렸다. ‘쇼츠 장인’으로 유명한 의원실에서는 의원과 보좌진이 일주일에 한 번은 쇼츠 전략 회의를 열고, 의원 대면 보고가 어려우면 일일 영상 업로드 계획을 개인 카톡으로 보고한다고 한다. 쇼츠 알고리즘의 핵심은 빈도이기 때문에 매일 업로드를 지키지 못하면 유튜브가 외면하고, 외면당한 의원은 보좌진을 탓한다.
최근 유명 정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한 의원은 국감을 앞두고 그 채널 PD를 아예 보좌관으로 스카우트하기도 했다. ‘열심히’ 영상을 올리는 의원 채널은 지역구 주민 강아지 쓰다듬기, 주말 등산하는 모습처럼 의정 활동과는 거리가 먼 영상을 올려도 금방 조회 수 수만을 찍고 열렬한 댓글이 주렁주렁 달린다. 지지자들은 “우리 의원 인간미 있다” “현장 감각 최고”라며 환호한다. 영상 내용보다 노출이 목적이 됐다.
문제는 이런 의원들에게 자극받아 엇나가는 사례다. 입법·정책 실무 보라고 채용한 비서관들에게 “옆방 의원은 구독자가 n만명인데, 왜 난 아직 이것밖에 안 되냐” “우리는 왜 이런 영상 못 만드냐”며 괴롭히는 의원들 얘기다. 최근 만난 한 보좌관은 “조회 수와 의원 인지도는 비례하기 마련인데, 이걸 직접 말할 수도 없고 본인이 깨달을 때까지 의미 없는 영상을 계속 만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나마 “옥상으로 따라와” “정부가 똥 싸고 있다” “애지중지현지, 뭐지?”처럼 자극적 발언으로 스스로 콘텐츠를 만드는 의원은 노력이라도 했다는 평가를 받는 웃픈 현실이다.
1년에 한 번뿐인 국감의 질도 함께 나빠지고 있다. 국정감사NGO 모니터단이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 22일까지 전체 피감 기관 474곳 중 180곳(38%)이 질의를 한 번도 받지 못했다. 과방위는 지난 24일 50여 피감 기관을 이날 하루 일정에 몰아넣어, 질의 한 번 받지 못한 기관 비율은 이 통계보다 훨씬 높다. 국정감사 직전 조직 개편으로 소관 상임위가 바뀐 기관은 사실상 ‘무(無)질문’ 상태였다.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로 넘어간 산하기관들이 그렇다.
정치인이 대중의 시선을 좇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 쇼츠로 정치의 민주화를 이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정치가 친근해졌다. 문제는 친근함에만 머무르려 하는 것이다. 수십 초 길이의 쾌감에 익숙해진 이들이 과연 4년 동안의 의정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https://www.chosun.com/opinion/cafe_2040/2025/10/30/CVFJEGPIQVCPLKBVA26ZEBUFKQ/
'오피니언.시각.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일본인 88인의 이야기' 출간한 김황식 전 총리 …"쇼토쿠 태자부터 오타니까지, 이들을 알면 일본이 보입니다" (1) | 2025.11.02 |
|---|---|
| 미중 사이에 낀 K-조선, 진짜 시험 시작됐습니다 (2부) - 권효재 대표 (0) | 2025.11.02 |
| 李는 尹을 벗어날 수 있을까 (0) | 2025.11.01 |
| 관세 전쟁은 세계 산업 전쟁, 우린 뭘 하고 있나 (0) | 2025.11.01 |
| 한국 경제 진짜 문제점은 통화량입니다. - ft. 김경원 교수 3부 (0) | 2025.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