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으로 말하자면
조수빈 방송인·강남대 특임교수 2025.10.28.

최민희 과방위원장이 21일 “딸 결혼식을 통해 피감 기관에서 화환을 받은 건 적절하지 않다”는 야당 의원 지적에 답변하며 울컥하고 있다. 최 의원은 20일에는 "양자역학을 공부하느라 딸의 결혼식에 신경을 못 썼다"고 했다. /국회방송
이 문장은, 종이 위에 멈춰 있을까. 사실, 움직인다. 마침표를 찍을 때마다 다음 문장으로 확장한다. 의미는 입자처럼 응축하고, 감정은 파동처럼 번진다. 열심히 글을 쓴들, 읽는 사람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말은 누군가 인지할 때만 진폭을 일으킨다. 내가 쏘아올린 말 한마디, 당신의 우주에 어떤 파문을 일으킬까.
“양자역학을 공부하느라 딸 결혼식도 못 챙겼다.”
말은 ‘무엇을’보다 ‘누가’ 하느냐가 중요하다. 일반인이었다면 실없는 소리였을 텐데, 정치인이 던진 말이다. 사람들은 인지했고, 파동을 일으켰다.
난 문과 출신이다. 그런데 유튜브가 자꾸만 양자역학 영상을 추천한다. 푹 빠질 만하다. 과학인데 철학 같은, 신기한 학문이다. 세상 이치를 양자역학으로 설명하는 사람도 많다. 이를테면 ‘끌어당김의 법칙’-생각한 대로 현실을 만든다는 믿음-흔들리는 마음 붙잡기엔 제격이다. 양자역학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 입자는 다른 모습을 띤다. 결국,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현실의 성격을 결정한다.
슈뢰딩거의 사고 실험이 있다. 방사능 물질이 든 상자에 고양이를 넣는다. 방사능은 붕괴할까? 고양이는 관측 전까지, 살아 있음과 죽음이 겹친, ‘중첩 상태’로 기술된다. 그러나 상자를 여는 순간, 어느 한쪽으로 확정된다.
말도 비슷하다. 누군가 들어야 의미를 갖는다. 입 밖에 나오기 전 말은 여러 가능성을 담는다. 중첩 상태다. 하지만 내뱉는 순간 현실로 굳어진다. 말한 의도를 떠난다. 중요한 건, 들은 사람이 어떻게 해석하느냐다. 그러니 늘 듣는 사람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관찰자를 잊은 말이 얼마나 큰 파문을 일으키는지, 역사는 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정말 그 말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한번 인식된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입자처럼 굳어져, 분노라는 파동을 만들었다. 그 진동이 증폭되어, 혁명, 현실로 확정되었다.
오래전, 최민희 의원이 딸과 함께 출연한 방송을 본 적이 있다. 사춘기 딸을 걱정하던 엄마의 마음이 애틋했다. 그래서 ‘혼사도 못 챙겼다’는 말이 쉽게 겹쳐지진 않는다. 아니면 8년 만에 어렵게 국회로 돌아왔으니, 보란 듯 치르고 싶었을 수도 있다. 나 역시 자식 둔 엄마라, 입찬소리 보태고 싶진 않다. 그러나 말은 다른 문제다. 언제나 듣는 사람이 말을 해석한다. 남에게 어떤 파동을 일으킬지 헤아린다면, ‘양자역학을 공부했다’는 의미가 더 빛날 뻔했다.
갈수록,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잊은 말이 많아진다. “집값 떨어지고 나면 사라.” “15억까지는 서민 아파트다.” 이런 말들은 사회에 어떤 파동을 일으킬까. 걱정이 앞선다. 자기 집값은 오른 뒤에야 팔고, 고가 주택에 사는 공직자 입에서 나온 말이라 더 그렇다.
“우리까지만, 너희는 내 세계에 들어올 수 없어.”
듣는 사람에게 그런 불필요한 파동을 일으키진 않을까. 다시 말하지만,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10/28/BYS6V26B2BGUZCPI3LT77U3Y7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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