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조금'은 누군가의 전부다
이정구 기자 2025.10.23.
미국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올해 2월부터 9개월째 이어지는 관세 갈등의 해법이 나왔다.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입을 통해서 말이다. 그는 지난 19일 본인 유튜브 채널에서 미군 철수, 관세 협상 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그냥 LG랑 현대자동차가 좀 손해 보면 돼요. 아깝긴 한데”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9월 미국 ICE(이민세관단속국)가 한국인 근로자 317명을 구금한 조지아주 사태에 대해 “ICE에서 그냥 한 게 아니다”라며 한국 측이 관세 협상에 서명하지 않아 벌어진 보복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면서 아깝지만 기업이 손해를 보면 된다고 했다. 기업이 왜, 어떻게 손해를 봐야 하는지, 그러면 양국이 몇 달째 팽팽하게 줄다리기하는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지 근거는 없다. 기업이 ‘그냥’ ‘좀’ 손해를 보면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현 상황을 ‘2025년 세계 무역 전쟁’이라고까지 하는데 허무할 정도로 단순한 해결책이다. 백방으로 뛰는 정부의 통상 업무 관계자, 기업인들이 헛심을 쓰고 있는 건가.
그의 머릿속에서 기업은 어떤 이미지일까 궁금해졌지만 범인(凡人)으로선 이해할 수 없을 테니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최근 몇 달간 바빴던 현안에서 기업을 떠올려봤다. 주요 산업 중 가장 큰 위기에 놓인 석유화학 산업은 전후방 고용 유발 인원만 약 40만명이다. 주요 공장 한두 곳이 문을 닫으면 협력사 수십~수백 곳, 셀 수 없는 근로자까지 여파를 미친다. 그가 말한 현대차, LG가 미국에 진출할 때 함께 나간 중소·중견 협력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기업 한두 곳이 적당히 손해 좀 보면 될 것’이라는 그의 말이 너무도 가볍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달 말 열리는 ‘경주 APEC 정상회의’는 경제 국격을 알리는 무대로 준비한다는데, 그가 제시한 해법이 여기서도 통할까. 그럴 일은 없겠지만, 트럼프 대통령, 중국 시진핑 주석,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 등 세계 정치·경제·산업을 이끄는 리더들 반응이 궁금하다. 기업이 그냥 좀 손해를 봐도 되는 나라에 투자하고 싶을까. 그런 나라의 기업과 사업을 함께하고 싶을까.
쉬는 날 가끔 고향집에 내려가 농사를 돕다 보면 육체노동뿐 아니라 일[業] 자체의 가치를 돌아보게 된다. 땀을 흘리다 보면 노트북으로 써가는 원고지 몇 장짜리 기사에서 어느 산업을 ‘호황’ ‘불황’으로 표현하는 게 수많은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다시 떠올린다.
그래서 이제는 ‘작가 겸 방송인’으로 활동하며 정계 은퇴를 선언했지만 여기저기 모두 말을 얹는 그의 이번 표현이 계속 머리에 남았다. 조지아주 사태 때 협력사 직원으로 일하던 아들이 구금됐던 한 부부는 뒤늦게 그 소식을 듣고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다가 펑펑 울었다”고 했다. 아들의 귀국을 기다리던 그 부부는 “다른 것 다 필요 없고, 아들만 한국에 돌려놓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래도 기업이 그냥 좀 손해 보면 될 일일까?
https://www.chosun.com/opinion/cafe_2040/2025/10/23/5IV7NPWCENFEHKZ7R6A7TFSVY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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