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는 벽돌, 통계는 건축인데… 국가데이터처가 웬말인가
조진서 외신 뉴스레터 '오호츠크 리포트' 에디터 2025.10.22.
몇 해 전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 놀러 가 민박집에 묵었다. 넓은 전원주택이었고, 집주인 부부는 일제 SUV를 몰고 가정부를 두고 사는 부유한 이들이었다. 어느 날, 주인 아주머니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정히 차려입고 나왔다. 첫 해외여행을 가기 전 관청을 방문한다나. 여권을 신청하느냐 물었더니, 그게 아니고 “일단 출생신고부터 해야”라고 한다. 손주 볼 나이까지 무적자(無籍者)로 지냈다고? 하지만 그곳에선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란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등 저개발 지역 국가들은 주민등록 제도가 부실하다. 국가 차원 전산 시스템이 없거나, 있어도 국민이 굳이 자기 존재를 알려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출생신고를 해봐야 얻는 건 없고 세금이나 뜯긴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민박집 아주머니처럼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유니세프는 전 세계 5세 미만 어린이 4명 중 1명이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그래서 통계 관련 기관과 국제기구들은 위성사진, 전력 소비량 등 다양한 자료로 인구를 추정한다. 그럼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유엔이 발표한 ‘지구 인구 82억명(2024년 기준)’도 심각한 과소평가라는 주장이 있다.
올 초 핀란드 알토대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은 이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연구팀은 1975년부터 2010년 사이 중국·브라질·호주 등 35국의 댐 건설 사례를 추적했다. 댐이 들어서면 수몰 지구 주민들에게 이주 보상금을 주곤 한다. 그러면 무적자로 살던 사람들도 보상금을 신청하러 나온다. 연구팀이 농촌 지역 보상금 지급 건수를 집계하자 종전 추정 인구와 최고 72% 차이가 났다. 통계학자들의 고민은 댐 수심만큼 깊어졌다.
그래도 우리 한국은 인구 통계가 비교적 정확하다. 국민도 협조적이다. 마침 이번 주 인구주택총조사가 시작됐다. 5년에 한 번 전체 가구의 20%를 표본으로 삼아 전화·인터넷·대면으로 진행한다. 인구 통계는 예산 편성, 복지, 인프라·주택 공급, 환경 보호 등 많은 정책의 기반이 된다. 조사에 응한다고 수고비를 받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낸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게 하는 일이니 돈을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쁘게 참여할 만하다.
단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 조사 담당 부처의 명칭이다. 통계청이 이달 1일 ‘국가데이터처’로 이름을 바꿨다. 원래 ‘데이터’는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관찰값을 뜻하고, ‘통계’는 데이터에서 유용한 지식과 의미를 찾는 과정을 뜻한다. 데이터가 벽돌이라면 통계는 건축이다. 기관의 위상은 ‘청’에서 ‘처’로 올랐지만 이름은 격하된 셈이다. ‘데이터 과학’이란 느낌을 주려 했는지는 몰라도 명칭 조정이 필요해 보인다.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10/22/R6D3Z5BZMRHNRDYOZU5KF4TKSQ/
'오피니언.시각.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原電 결단 못 하면 AI 100조 예산 바다에 버리는 격 (0) | 2025.10.26 |
|---|---|
| 단어 인플레이션 시대, 진심은 '슴슴한 글'에 있다 (0) | 2025.10.23 |
| 이시바 총리의 '전후 80년 소감', 일본에서는 반응이 냉담했던 이유 (0) | 2025.10.22 |
| 걷어찬 人材가 '비수'로 돌아온다면 (0) | 2025.10.22 |
| 역사를 개인 시각 아닌 사실로 평가해야 (0) | 2025.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