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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우동집에서 실감한 글로벌 플랫폼의 힘

마음백과사전 2025. 10. 12.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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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우동집에서 실감한 글로벌 플랫폼의 힘

채민기 기자 2025.10.10.

 

외국인 관광객으로 붐비는 교토의 니조 성. 에도 막부의 첫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수도 교토를 방문했을 때 머무를 숙소로 1603년 건립된 이궁이다. /채민기 기자

 

추석 연휴에 다녀온 일본의 옛 수도는 듣던 대로 오버투어리즘(과잉 관광)의 현장이었다. 국제 뉴스에서 교토(京都)는 파리·로마 등과 함께 버거울 만큼 여행객이 몰리는 도시로 자주 언급된다. 과연 이름난 관광지마다 인산인해였다. 긴 연휴를 맞은 한국·중국 관광객이 대부분일 줄 알았는데, 어딜 가나 그 못지않게 서양 사람이 많았다. 저녁을 먹으러 간 우동집에선 우리 가족을 제외한 손님 여남은 명이 모두 서양인이었다. 그들에게 일본은 방문객 수 1위인 한국(2024년·882만명)에서 느끼는 것보다 훨씬 먼 나라일 텐데, 주택가 골목의 작은 식당까지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지 궁금했다.

 

앞서 가본 식당들을 떠올리며 내린 결론은 구글맵이었다. 서구권 관광객을 비롯해 외국인이 많은 가게들은 구글맵 친화적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평점이 높고 리뷰와 사진이 많았다. 메뉴, 가격, 영업시간을 미리 확인하고 자세한 길 안내까지 받을 수 있으니 위치도 언어도 문제 될 게 없다. 갈수록 중요해지는 위치 정보의 가치를 그곳에서 실감했다. 식당만이 아니었다. 서울역보다 몇 배는 복잡한 교토역에서 길을 잃었을 때도, 버스를 잘못 탔다는 걸 깨닫고 이름 모를 동네에서 황급히 내렸을 때도 가장 먼저 구글맵을 켰다. 버스·열차의 발착(發着) 시각과 탑승 위치 정보 등이 그 안에 다 있었다.

 

한국은 어떤가. 지난해 한국과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각각 1637만명, 3687만명이었다. 같은 기간 한국이 약 100억달러(14조2000억원)의 여행 수지 적자를 기록하는 동안 일본은 6조6000억엔(약 61조3700억원) 흑자를 봤다. 한국은 일본에 비해 외국인의 여행 난도가 높은 나라로 평가받는다. 구글맵이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점이 가장 대표적인 장벽으로 꼽힌다.

 

구글은 한국에서도 외국처럼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고정밀 지도가 필요하다며 거듭 데이터 반출을 요청했다. 정부는 주요 군사 시설 노출 우려 등을 이유로 불허해 오다 현재는 결정을 유보한 상태다. 국내 IT 업계에서는 구글이 서버를 한국에 두면 고정밀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데도 세금과 규제 때문에 투자를 꺼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안보는 무엇보다 중요하고, 외국 기업의 요구를 무작정 들어줄 이유도 없다. 그러나 구글맵이 제대로 작동하는 나라들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구글이 우리에게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이며 정부와 업계의 우려를 불식하고 서비스를 가능하게 할 방법은 없는지 검토했으면 한다. 구글이 예뻐서가 아니라 한국이 세계의 흐름에서 동떨어진 갈라파고스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불평등 조약’을 요구하는 외국 기업의 행태에 분개하는 데서 끝난다면 외국인들은 계속 먹통이 된 구글맵을 들여다보며 한국의 거리를 헤매야 할 것이다.

 

무라타 단료가 그린 대정봉환도(1935).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1867년 니조 성에서 정권을 천황에게 반납하겠다는 뜻을 밝히는 장면을 묘사했다. 니조 성 어전에는 이 그림을 참고해 당시 상황을 인형으로 재현한 전시물이 설치돼 있다. /위키피디아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가장 유명한 금각사·청수사가 아니라 니조 성이었다. 그곳의 어전(御殿)에는 1867년 10월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영주들을 모아놓고 대정봉환(大政奉還·국가 통치권을 천황에게 반납)의 뜻을 밝힌 사건이 등신대의 인형으로 재현돼 있었다. 요시노부는 메이지 천황에게 올린 상소문에서 정권을 반납하는 이유의 하나로 “요즘은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져 권력을 조정에 하나로 모으지 않으면 나라의 근본이 서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들었다.

 

일본이 이듬해 메이지 유신을 거쳐 세계와 교류를 넓히는 동안 조선은 전국에 척화비를 세웠다. 15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디지털 쇄국’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니조 성의 정교한 인형 앞에서 한동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https://www.chosun.com/opinion/espresso/2025/10/10/OKCMS2B6SFFK5JGGYQHKYKD44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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