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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포도뮤지엄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展…철조망에 손수 꿰어 넣은 비즈 "우리의 사랑으로 폭력을 덮었네요"

마음백과사전 2025. 8. 20.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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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에 손수 꿰어 넣은 비즈…

"우리의 사랑으로 폭력을 덮었네요"

제주 포도뮤지엄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展

 

서귀포=허윤희 기자 2025.08.19.

 

라이자 루의 설치 작품 ‘Security Fence’(2005). 335.3×396.2×396.2cm. 폭력과 감금의 상징인 철조망에 비즈를 촘촘하게 감아 눈부신 금빛 구조물이 탄생했다. /포도뮤지엄

 

미국 브루클린에 사는 일본 작가 쇼 시부야는 매일 아침 옥상에 올라 뉴욕타임스를 읽는다. 전쟁과 재난, 사건·사고가 가득한 신문에서 가장 인상적인 기사 하나를 골라 신문지 위에 그 내용을 그린다. 그리고 다른 지면에는 그날의 하늘을 아크릴 물감으로 담는다. 2020년 팬데믹 초기부터 시작된 작가의 일일 의식이다.

 

아름답게 채색된 뉴욕타임스 지면 36점이 서귀포 전시장에 질서 있게 걸렸다. 한쪽 벽면엔 총격 사건과 참사 소식이 압축된 색면으로 기록됐고, 마주한 벽면엔 같은 날 아침의 고요한 하늘 풍경이 지상(紙上)에 펼쳐졌다. 인간사의 격렬한 소란과 우주의 평온함이 같은 24시간 안에 공존한다. 액자를 젖히면, 채색된 작품 뒷면에 원본 신문이 있다. 한국 뉴스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도 4점. 비행기 날개가 화면을 가로지르는 그림은 무안공항 참사에서 비롯됐고, 새까만 바탕에 붉은 곡선 굽이치는 그림은 올봄 영남 지역을 휩쓴 대형 산불이 배경이 됐다.

 

쇼 시부야, 'MANHATTANHENGE'. 한쪽 벽에는 전쟁과 참사 기사에서 영감 받은 색면들이, 마주한 벽에는 같은 날 아침의 고요한 하늘이 펼쳐진다. /포도뮤지엄

 

쇼 시부야, 'MANHATTANHENGE' 외 35점. 뉴욕타임스 신문지 위에 그린 작품 36점이 걸렸다. 한쪽 벽에는 전쟁과 참사 기사에서 영감 받은 색면 18점, 마주한 벽에는 같은 날 아침의 고요한 하늘을 그린 18점이 펼쳐진다. /포도뮤지엄

 

제주 서귀포 포도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 풍경이다. 전시는 ‘광활한 우주 속 미약한 존재인 우리는 왜 끊임없이 갈등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모나 하툼, 제니 홀저, 라이자 루, 이완 등 국내외 유명 작가 13인의 작품을 선보인다. 모나 하툼의 육중한 설치 작품으로 문이 열린다. 총 1.6t에 달하는 콘크리트 덩어리가 공중에 매달려 관객을 긴장시킨다. 레바논의 팔레스타인 난민 가정에서 태어난 하툼은 1975년 런던 방문 중 레바논 내전이 발발해 고국에 돌아갈 수 없게 됐다. 두 세대에 걸친 이중 추방의 역사와 10년 넘게 가족과 강제 분리됐던 경험이 작가의 예술 세계를 형성하는 뿌리가 됐다.

 

모나 하툼, 'Remains to be Seen'(2019).

총 1.6t에 달하는 콘크리트 덩어리가 공중에 매달려 있다. /포도뮤지엄

 

미국 작가 라이자 루의 ‘시큐리티 펜스(Security Fence)’는 철조망 구조물을 반짝이는 비즈 구슬로 촘촘하게 감은 설치 작품이다. 작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피해자였던 줄루족 여성 20명과 함께 1년간 비즈 수십만 개를 핀셋으로 하나씩 꿰어 작품을 완성했다. 여성 중 한 명은 “우리가 철조망을 사랑으로 덮고 있다”고 말했다. 반복적인 인내와 정성을 통해 트라우마를 치유해나간 작업이다.

 

이완, '고유시'(2025). 새하얀 벽면을 가득 채운 560개의 하얀 시계가 저마다 다른 리듬으로 째깍거린다. /포도뮤지엄

 

테마공간에 설치된 '유리 코스모스'(2025). 밤하늘을 수놓는 별처럼 수백 개의 유리 전구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 관객이 센서에 숨을 불어넣으면 모든 전구가 차례대로 빛을 발한다. /포도뮤지엄

 

한국 작가 이완의 작품 ‘고유시’는 국적과 나이, 직업에 따라 각기 다른 속도로 돌아가는 560개의 시계가 흰 벽을 가득 메웠다. 서로 다른 리듬으로 째깍거리는 시계는 빈부의 격차도 보여주지만, 결국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모두 유한하다는 진리를 깨닫게 한다. 김희영 총괄디렉터는 “광활한 우주와 비교하면 인간의 삶은 찰나보다 짧고 먼지처럼 미미하다”며 “개별의 존재가 어떻게 서로를 비추고 위로할 수 있는지 사유해 보는 시간”이라고 했다. 내년 8월 8일까지. 성인 1만원.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5/08/19/G7FNQJIODRHB3MZ5GQU6KUNC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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