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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도 삼킬 수 없는 쪽방촌의 마음들

마음백과사전 2025. 7. 18.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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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도 삼킬 수 없는 쪽방촌의 마음들

이주연 산마루교회 목사 2025.07.17.

 

7월의 폭염은 도시를 삼켰다. 쪽방촌으로 이어지는 언덕길은 바닥에서 나오는 반사열로 숨이 멎을 지경이다. 사정상 나는 한 달여 만에 이곳을 찾았다. 산중 공동체에서 기른 야채도 준비했다. 노숙에서 벗어난 이들이 기른 사랑의 선물이다.

 

불볕더위에도 어김없이 진료를 위해 의사 선생님이 먼저 도착해 계셨다. 존경스럽기만 하다. 그는 서울대병원에서 심장 이식 수술도 하는 명의다. 그토록 중하고 바쁜 일 중에도 쪽방촌 진료만큼은 꾸준하다. 때때로 회의와 학회 일로 식사를 거르면서도 말이다. 그는 이번에도 이렇게 말한다. “다들 어렵게 사시는데도 웃으며 진료받는 모습을 보면 참 존경스럽습니다!” 그 말끝엔 늘 소박함이 여운으로 남는다.

 

나는 쪽방촌에 가면 제일 먼저 찾는 형제가 있다. 바로 그에게 갔다. 집단으로 거주하는 쪽방 복도에는 에어컨이 돌고 있었다. 다행이다. 형제에게 가니 그는 복도를 향한 문을 열어 놓고 땀을 식히며 앉아 있었다. 그는 두 개의 의족을 빼서 곁에 가지런히 세워 두고 있었다. 나는 겨우 누울 만한 자리의 한쪽에 끼어 앉아 말을 건넸다.

 

“더위에 어떻게 지내요? 해발 700m 평창 공동체는 시원하니까 와서 지내시지요.” “걱정 마세요. 이렇게 잘 지내고 있잖아요.” 그는 오늘도 같은 대사를 읊는다. 나보다 걱정 없는 얼굴과 목소리로 말이다.

 

그는 밝은 표정으로 “나 이사 갑니다”라고 한다. 어디로 가냐고 물었더니 강남이란다. “와, 강남 주민 됐네! 이젠 넓은 방 한 칸은 되겠죠?”라고 했더니 그는 멋쩍게 웃는다. “거실도 있어요. 하하. 영구임대주택 당첨됐어요.”

 

기쁜 소식인지라 “이젠 나보다 낫네. 나는 한 칸이고, 그것도 내 것이 아닌데”라고 했다. 그는 “목사님 정말이에요?”라며 소년처럼 웃는다. 나는 그의 이사 날짜를 확인했다. 그리고선 “이삿짐은 교회 승합차 한 대면 되겠지요? 그날 올 테니 기다려요”라고 했다. 사양하는 그와 가벼운 줄다리기를 한 끝에 약속을 잡았다.

 

봉사가 끝나 가는데, 한 할머니가 나를 찾는다고 한다. 꼭 보고 가란다. 앞을 못 보는 할머니다. 지난겨울 강추위에 화장실도 없는 쪽방에서 만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추위에 움츠린 허리와 심한 지린내! 어찌하겠는가. 그때 그분은 우리가 생필품과 신발을 선물하니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사양했다. 이번에 찾아가니 앞도 보지 못하지만 밝고 맑은 표정으로 우리를 맞는다.

 

“할머니, 그간 잘 지내셨어요? 이 더위에 어떻게 지내세요?” “나야 잘 지내지요. 더운데 어찌 또 오셨담? 지난번 목사님이 내게 준 운동화 신고 틈나면 남산 위에까지 산보해요. 그 운동화가 고마워 보자 했어요.” 할머니는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잡는다.

 

우리는 할머니를 위해 함께 기도를 올렸다. 우리가 헤어져 나오는데, 할머니 뒤에선 낡은 선풍기 한 대가 돌고 있었다. 할머니의 더위를 식혀 주는 그 바람이 그저 고마웠다.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07/17/2FWTTMPJL5HFTAI2MNVZ3F3S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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