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델'에 빠지다
더 세진 하이브리드 테니스의 거센 변신
정상혁 기자 2025.06.14.
스포츠가 흥하려면 ‘빠’가 필요하다. 일찍이 빠떼루(파테르·레슬링)가 전국에 울려 퍼졌고, 빠던(빠따 던지기·야구)에 들끓었다. 그리고 이제 빠델(Padel)이다.
빠델? 이름부터 빠져드는 이색 스포츠, 열기를 느끼려면 용산역에 가보시라. 아이파크몰 7층 루프톱에 설치된 빠델 경기장, 단박에 서울 이색 명소로 거듭났다. 생긴 건 영락없는 테니스장인데 크기는 3분의 1 수준. 청량감 넘치는 파란색 코트, 게다가 투명 유리벽에 둘러싸여 있다. 테니스와 스쿼시를 섞어 놓은 것이다. HDC아이파크몰 관계자는 “테니스 열풍을 염두에 두고 더 특색 있는 종목을 궁리했다”며 “외국에서 인기가 높다고는 들었지만 예상보다 반응이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비용이 시간당 7만원인데도 개장 1년 만에 이용객 2만명을 넘겼다. 지난 월요일, 코트에서 고등학생 무리도 발견됐다. 체험 학습 중이었다.
◇전국 들썩, 조기교육까지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에 마련된 빠델 코트에서 한 여성이 스매싱을 시도하고 있다. 경기장을 둘러싼 투명 유리벽 덕에 테니스보다 다채로운 플레이가 가능하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팡팡, 경쾌한 공 때리는 소리로 가득 찬다. 올해만 이미 현대엔지니어링·나이키·존슨앤드존슨 등 기업부터 싱가포르 한국상공회의소·중랑구청·서울관광재단 등 각 단체 사원 연수 및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신기하고 또 쉬우니까. 빠델의 위상이 드높은 유럽 및 중동에서 온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일부러 들러 ‘한판’ 때리고 가는 관광 코스로 소문났다고. 이곳 김나영(26) 매니저는 “코트가 작고 라켓도 가볍다 보니 체력적 진입 장벽이 낮다는 게 열풍의 가장 큰 이유 같다”며 “3040세대가 가장 많지만 해외 유학을 앞두고 미리 익혀두려는 미취학 아동 상담도 들어오고 실제 일곱 살짜리 회원도 있다”고 했다.

빠델 라켓은 줄이 없고 구멍만 뚫려 있다. 탄소섬유 재질로 무게는 400g 이하.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직접 쳐보니 애들도 충분히 할 만한 운동이었다. 라켓은 조금 큰 밥주걱 사이즈, 줄 대신 구멍만 뽕뽕뽕 뚫려 있다. 타격 컨트롤이 훨씬 용이한 것이다. 손목 부담도 거의 없었다. 코트가 작은 데다, 세게 치지 않아도 볼(테니스공)이 잘 나가 오히려 힘을 적당히 주는 데 집중해야 했다. 다만 박진감은 몇 배나 증폭된다. 벽 때문이다. 스쿼시처럼 유리벽을 활용해 공을 상대 진영으로 넘길 수 있다 보니, 기존 테니스에서 보기 힘든 2분 이상의 랠리가 허다하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30~40번씩 ‘핑퐁’이 이어지니 도파민 폭발. 테니스 선수 출신 빠델 코치 강민주(24)씨는 “둘 다 해본 입장에서 빠델이 테니스보다 재밌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서울·김포·화성·대전에 잇따라 경기장이 들어서는 등 재빠른 성장세의 배경이다.
◇빠델에 투자하는 호날두?

빠델 마니아로 유명한 축구 스타 호날두가 2023년 싱가포르에서 빠델을 즐기는 모습. /AFP
빠델은 1962년 멕시코의 좁은 주택가에서 처음 시작돼, 남미와 유럽으로 뻗어나가며 축구 버금가는 인기 스포츠가 됐다.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40)도 빠델의 열렬한 팬. 직접 해설진으로 참여해 시합을 중계하고, 최근에는 고국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 500만유로(약 78억원)를 투자해 내년 개장을 목표로 한 ‘빠델의 도시’ 건설까지 진행하고 있다. 프랑스 축구 레전드 지네딘 지단(53)도 빠델 센터를 운영 중이다. 라파엘 나달 등 최정상 테니스 선수부터 에바 롱고리아 같은 할리우드 스타까지 즐기는 구기 종목으로 소문나면서 빠델의 세계적 인기는 급증했다.
세계빠델연맹(FIP)이 인증한 국내 첫 빠델 경기장이 지난해 10월 대전에 개장했다. 이곳을 운영하는 체육 교사 출신 민경학(45)씨는 “오산·서산·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하루 20~30명씩 방문한다”며 “축구에서 파생한 소규모 축구 ‘풋살’이 그 고유의 매력으로 탄탄한 생활체육 종목이 됐듯 빠델 역시 그렇게 될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고 말했다. 세계빠델협회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빠델 아마추어 선수는 3000만명. 코트 규모는 유럽(4만2600개), 남미(1만2850개)에 이어 아시아(3200개)가 뒤쫓고 있다. 더 좋은 경기장과 더 많은 시합을 위해 카타르·인도네시아 등 해외 원정에 나서는 국내 동호인도 늘고 있다.
◇섞으니 짜릿… 진화하는 테니스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 리조트에 작년 10월 개장한 '피클볼 파크' 전경. /오크밸리
예쁜 옷에 사진발 잘 받는 ‘인스타그래머블 스포츠’로 각광받으면서 명실상부 가장 뜨거운 생활체육 종목으로 자리매김한 테니스. 하이브리드 혼종 역시 잇달아 히트하고 있다. 테니스와 탁구를 섞은 ‘피클볼’(Pickle Ball)이 대표적 예. 테니스장 4분의 1 크기 경기장에서 더 가벼운 플라스틱 공을 치고 받는 게임으로, 이미 전국 지자체에서 대회가 치러지고 있으며, 동네 어디서든 칠 수 있도록 ‘휴대용 이동식 네트’까지 판매되고 있다. 조금 더 황당한 변신이라면, 테니스와 야구를 섞은 ‘테니스 야구’(Tennis Baseball)일 것이다. 이를테면 투수가 라켓으로 테니스공을 쳐 포수에게 보내고, 타자는 라켓으로 이 공을 받아친다. 야수는 글러브로 공을 잡아 라켓으로 쳐 송구한다. 구속 190㎞를 넘나드는 정신없는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빠델에 축구를 결합한 신종 스포츠 '빠드볼' 경기 한 장면. /Padbol®
섞고 섞는다. 테니스와 스쿼시를 섞은 게 빠델, 이 빠델에 또 축구를 섞은 ‘빠드볼’(Padbol)도 탄생했다. 빠델처럼 2대2 복식이 기본 형태이고 규칙도 비슷하지만, 라켓 대신 발·몸통·머리로 공을 쳐 네트를 넘겨야 한다. 아르헨티나에서 2008년 처음 고안됐고, 2013년부터 ‘빠드볼 월드컵’이 열리고 있다. 영국 국가대표 출신 축구선수 시오 월컷(36)이 경기장 건립에 나서는 등 이 역시 전 세계로 확산 추세다.
◇텃세에 우는 ‘테린이’ 환영

지난해 카타르 도하에서 빠델을 치고 있는 테니스 선수 노바크 조코비치. /인스타그램
계속되는 하이브리드는 테니스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다. 빠델·피클볼 등이 테니스를 대체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 테니스 전설 노바크 조코비치(38)는 지난해 윔블던 대회 기자회견에서 “풀뿌리 테니스가 멸종 위기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을 만큼 저렴하지도, 접근성이 좋지도 않다는 것이다. “물론 테니스는 모든 라켓 스포츠의 왕 혹은 여왕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제대로 조치하지 않는다면 곧 테니스장은 빠델이나 피클볼 코트로 바뀔 겁니다. 테니스 코트 하나 면적에, 빠델 코트는 3개를 지을 수 있으니까요. 간단한 계산이죠.”
테니스의 대중적 인기는 높아졌으나 초보는 되레 진입이 더 어려워진 역설도 돌아볼 지점. 태부족한 코트로 인한 예약 전쟁, 여기에 한국 생활체육 특유의 텃세도 한몫한다. 10여 년 동호회 활동을 해온 한 테니스 애호가는 “미리 테스트를 거쳐 실력을 검증하거나 지인 추천 등으로 신규 회원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초보가 동호회에서 실력을 쌓거나 경기를 즐기는 건 사실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회사원 정성룡(33)씨는 최근 사내 빠델 동호회를 꾸렸다. “테니스를 치고 싶어 동호회를 알아보니 가입 조건이 최소 6개월 이상 경력자여서 좌절한 기억이 있다”며 “빠델은 테니스보다 배우기도 쉽고 이제 막 국내에서 시작된 만큼 모두에게 문이 열려 있다”고 했다.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5/06/14/DWNG42FHI5FVVOYQD4DDSLKL2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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