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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정너 연구 용역'은 신종 지식인 정책인가? - 전상인 서울대 명예교수

마음백과사전 2025. 8. 29.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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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정너 연구 용역'은 신종 지식인 정책인가?

전상인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 2025.08.27.

 

‘이재명 정부 출범에 즈음한 한국 사회의…’라든가 ‘대전환기 대한민국의…’와 같은 타이틀로 시작되는 학술 행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대학가가 개강을 맞게 되면 이런 유의 세미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정권이 바뀐 만큼 딱히 못 할 이유도 없지만 그렇다고 꼭 필요한 일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권력 교체와 학문 어젠다는 일대일 대응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 우리나라 정가와 학계는 유별난 측면이 있다.

 

이는 관(官)의 힘이 막강한 한국적 현실이 학문의 세계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대학이나 학회, 연구소 등의 운명이 정부와의 ‘코드 맞추기’ 여하에 따라 좌우될 때가 많은 것이다. 국가 발전을 위해 양쪽이 머리를 맞대는 일 자체는 권장할 일이다. 순수학문이 아닌 응용학문의 경우 학문의 용역성(用役性)은 보편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학자들은 용역에, 조금 고상하게 미화하여 ‘프로젝트’에 유난히 열심인 경향이 있다. “특정 목표를 위해 제한된 기간 및 예산 내에서 구체적인 성과물로 표현되는 조사나 분석, 설계 과업” 말이다. 그게 학자 개인과 소속 기관의 역량이나 실적으로 치부되는 분위기마저 팽배해 있다.

 

우리나라는 프로젝트 발주자 중 공공 부문의 비율이 매우 높다. 중앙정부나 지자체, 공공기관, 국책연구원 등이 진행하는 연간 수조 원 규모의 연구 과제를 가리키는데, 대형 프로젝트일수록 공공 부문의 비율이 높다. 게다가 언제부턴가 집권 세력마다 이런 정부 프로젝트를 전리품처럼 생각한다. 자신들의 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한 용도로 말이다. 그런 만큼 ‘용역 학자’들은 정권의 요구나 공무원의 주문에 종속되는 을(乙)의 위치가 되기 십상이다.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말만 해) 연구 용역’이 넘쳐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과거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 탈원전, 4대강 보(洑) 해체 관련 용역이 대표적이다.

 

‘영혼 없이’ 살아가는 일부 지식인의 일탈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교수들이 관변 학자의 늪에 곧잘 빠지는 것에는 보다 현실적 차원의 이유도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교수들의 삶이 본업에만 충실하기에는 경제적으로 적잖이 팍팍하다. 대개 40세 전후에 시작하는 대학교수의 초임은 대기업 신입 연봉보다 낮은 편이다. 금전적으로 따지면 대학은 별로 매력적인 직장이 아니다. 16년째 동결되어 있던 대학 등록금이 올해 찔끔 오르긴 했지만 정부의 눈총은 여전히 따갑다. 인구 감소 여파로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 대학도 수두룩하다. 최근 우리 눈앞에 현실로 다가온 대학 핵심 인재들의 탈(脫)한국 행렬은 어쩌면 예정된 행로다.

 

그런 만큼 누가 그리고 무엇이 대학교수로 하여금 정치권이나 관가를 이리저리 배회하도록 만드는지, 보다 근본적으로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럴 때 대학의 재정난 및 교수 사회의 궁핍화가 의도적이든 결과적이든, 민주화 시대의 신종 ‘지식인 정책’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말하자면 프로젝트를 매개로 지식인의 존재 이유를 용역 학자에 두는 것인데, 배고픈 대학과 힘없는 교수를 관리하는 데 있어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도 없을 듯하다. 진보와 보수 상관없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식인 사회가 ‘물 들어올 때 노 젓기’ 식으로 한껏 바빠지는 행태를 보라. 관학 협력이라는 명분하에 많은 교수가 ‘비판적 지식인’이 아닌 ‘기능적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나라 대학가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관학 협력의 본래 취지 또한 퇴색하는 법이다.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수많은 지식인이 이른바 국정 기획·국정 개혁·국정 자문 등에 참여하지만 국민을 진심으로 감동하게 만드는 창의적 발상이나 혁신적 내용은 날이 갈수록 찾기 어렵다. 표지만 바뀌고 연도만 달라진, 마치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관급성 용역 결과물이 관료들의 좌우 측 서랍을 시류에 따라 옮겨 다닐 뿐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지식과 권력의 만남은 언제나 있어 왔고 어디서나 소중하다. 다만 선진국일수록 이들의 관계는 대체로 대등하고 실용적인 편이다. 학계와 정치권의 일정한 거리 두기, 정책 의제 설정의 자율성, 정권의 임기와 무관한 장기적 안목, 참여 지식인의 도덕성 및 사회적 책무감 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금 한국의 실태처럼 국정은 자꾸 헤매고 대학도 계속 시든다.

 

https://www.chosun.com/opinion/chosun_column/2025/08/27/B2ZA7DNRG5AELC2SJBRGBVNPV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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